폴란드로 간 아이들

성서한국 통일한국 선교한국!

청년 때 뒤늦게 회심을 경험한 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성경말씀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당시 전도사님의 권유로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하면서 졸지에 성경통독과 함께 전체 성경을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3년간 아이들과 성경 전체를 공부하면서 가슴에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말씀대로 성경말씀은 Logic on Fire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 단계로 저를 이끌어 가셨는데, 바로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얼떨결에 금식철야기도를 해 보겠다고 결심하고 교회에 간 첫날 저녁. 막상 자리에 앉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할 말도 의지도 없어져 멍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금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시계를 노려보다가, 정한 시간 땡 하자마자 급하게 음식을 챙겨 먹고 나서야 진정한 위로(?)를 경험했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그 날을 시작으로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열정을 주셨습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몇 년을 살았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학교 끝나면 기도하러 교회에 들르고, 공강 시간에는 운동장에 가서 스탠드 구석에 앉아 기도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과 같은 확신과 열정으로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통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제 입에서 ‘성서한국 통일한국 선교한국을 이루게 하소서!’ 하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요즘에는 ‘통일한국’이란 것이 온갖 정치적인 명제로 사용되며 그 당위성 조차 흐릿해졌고, 실제로 민족적, 정치적, 혹은 휴머니즘의 측면에서 다양한 입장들로 논의가 있지만, 당시의 뜨거웠던 저에게 ‘통일한국’이란 단어는 ‘성서한국’의 지향점이며 ‘선교한국’의 선결조건인 것 같은 중대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혼자서 ‘통일한국’을 위해 40일 작정 금식기도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기도를 같은 시기에 혼자 작정하고 새벽기도 다니던 또 다른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통일한국’에 아무런 힘도 보태지 못한 마음의 빚을 가지고, 그리고 어쩐지 통일한국-선교한국 으로 가는 일을 등한시 한 것 같은 복음의 빚을 진 채로 어느새 10년도 넘는 시간이 지나 버렸습니다.

‘여는교회’를 시작하며 몇 가지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통일한국’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가 닦아 놓은 길을 지나며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의 문을 열었듯, 여는교회가 통일한국을 통해 열릴 길을 지나며 닫힌 문을 열게 되기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오전, 비 오는 날이었는데 한 청년이 우비(?)를 입고 예배당에 들어섰습니다. 당시만 해도 초기라 (아직도 초기지만) 성도가 10여명 남짓할 때였는데, 갑자기 들어온 청년이 놀랍기도 낯설기도 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고향이 평양이라고 해서 너무 놀랐습니다. ‘통일한국’을 꿈꾸는 청년이어서 더 놀랐고, 지나다가 보여서 들어온 교회라고 무심하게 말하면서도 우리 교회에 정착해서 더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을 통해 ‘선교팀’이 시작되었습니다. 선교팀의 첫 시작으로 <영화상영회>를 진행합니다. 저는 이 시간을 통해 ‘통일한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과 마음’이 교회에 부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치적 혹은 민족적인 당위성 때문이 아니라, 예수가 없고 교회가 없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이 우리교회와 이 도시에 허락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성서한국, 통일한국, 선교한국!

20년 전 외치며 기도하던 때에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그러나 같은 정신 더 뜨거운 열정으로 꿈꾸며 <영화상영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땅의 형제들을 오늘도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들에게 진 복음의 빚을 갚을 길이 아직은 이런 것 밖에 없어 민망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