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역할은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오기 전’(3:23)이란, (1) 예수께서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시기 전; (2) 개인적으로 예수를 구원자로 믿기 전 이라는 뜻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은 선하시며 완전하시기 때문에, 율법 자체는 선하며 완전합니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운영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배우고, 이웃과 사랑하는 삶도 배웁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타락해서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으로 우리는 죄를 깨닫습니다. “율법으로, 사람의 노력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구나. 다른 방법이 있을까?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나?”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탄식한 것처럼, 율법 아래에 살면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구원자 예수에게로 인도합니다. “내 노력으로는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구나. 율법을 지키는 대신,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의 십자가로 완전한 의를 입을 수 있구나.” 율법은 의로움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구원자 예수에게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으로 할례를 받았건, 이방인이라 할례가 없건 하나님 앞에 차이가 없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께 용서 받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용서 받은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한 자손이고, 하나님의 유업을 함께 받는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구속에서 벗어나 십자가 복음을 믿고 나면, 성도는 ‘너’도 나와 한가족인 걸 깨닫습니다. 이전에는 나와 다른 사람, 나와 관계 없는 사람, 잘못하고 있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통하는 사람, 비슷한 사람만 나와 관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가족인 걸 깨닫고 나면 눈이 달라지고, 마음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구원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내가 ‘유대인’이라서, 비교적 율법을 잘 지켜서 이방인과 다르다고 생각했다면, 예수 안에서 이제는 나도 너도 용서 받은 사람일 뿐입니다. 이전에는 내가 종이라서 부끄럽고 위축 되었다면, 이제는 우리 모두 예수의 종일 뿐입니다. 우리는 함께 예수를 섬기고,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율법 아래 있을 때에는 ‘차이’를 보지만, 예수 안에 있을 때에는 ‘한 마음’을 봅니다. 율법주의는 끊임 없이 분리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28,29절을 ‘나’에게 주는 명령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읽어 보세요. 나는 종이었고, 이방인이었으며, 자격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나는 죄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아브라함의 가족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가 자랑, 기쁨, 소망입니다. 예수 안에서 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한 가족으로 살아갑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공동체를 세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