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배당으로 이사 온 지도 6개월이 지나갑니다. 단순히 예배장소가 필요해서 찾아온 곳인데, 예상하지 못한 경험을 하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러빗은 3주년 감사 Home Project 준비를 하며 처음 만났습니다. 매일 미국교회에 점심을 먹으러 오는 노숙인분들 중에, 젊은 흑인여성이 있어서 초대했습니다. 날이 추워지는데 유독 얇은 외투를 입고, 다른 분들에 비해 너무 어려 보여 청년들 생각도 나고 해서 ‘꼭 오라’고 여러 차례 권했습니다. 그리고 행사 당일, 와서 치킨숩도 잘 먹고, 새 침낭에, 큰 쇼핑백에 한 짐을 챙겨서 돌아갔습니다.
며칠 후 사무원인 Divine이 제게 와서 ‘러빗이 너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나가보니, 며칠 전 받은 새 침낭을 도둑 맞았다고 하나 더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새 침낭을 챙겨주고 꼭 따뜻하게 지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종종 점심시간에 만나 안부를 나누곤 했습니다. 며칠째 강추위가 계속 되던 어느날, Divine이 ‘너 혹시 소식 들었냐’며 물어 왔습니다. 러빗이 강추위에 공원에서 자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청년처럼 어려 보여도 아이가 하나 있다고 했는데, 옷도 새 침낭도 여러 번 줬는데 늘 춥게 하고 다니더니.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들은 성도들은 주일예배 중에 흐느껴 울기도 했습니다.
며칠째 슬퍼하던 어느날 기도 중에 든 생각입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 웃으며, 테이블에 앉아서, 직접 요리한 식사를 했던 것이 아마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외투도, 새 침낭도, 러빗의 마음에는 따뜻한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추위와 외로움과 싸우던 여기보다, 따뜻한 주님 품에 안긴 지금이 더 낫지 않을까. 오랜 후에 우리 주님 앞에서 러빗을 만나면, 아마 많이 반가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오스카 아저씨는 늘 저를 찾아서 당당하게 부탁을 합니다. 라이드를 해 달라. 건물 안에서 먹게 해 줘라. 내 짐을 맡아줘라, 몇 시까지 찾으러 오겠다. 우버 불러달라. 그러면서, 기회만 되면 자신의 계획을 얘기합니다. 지금 한 쪽 눈이 아파서 수술 받아야 하는데 치료 받기가 어렵다. 겨울이 되면 디씨는 추워서 남쪽으로 가고 싶은데, 준비가 어렵다. 체구가 워낙 작기도 하고 늘 부탁을 하셔서, 뭔가 안타까움 반 끌려다니는 마음 반 해서 자주 도움을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Divine이 전화해서 ‘오스카가 코비드에 걸렸다고 하는데, 너도 close contact 일 지 몰라서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괜찮았고, 걱정이 무색하게 격리를 마치고 다시 나타나서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몇 주 전, 자신의 짐을 메릴랜드의 동생에게 보내야 한다며 제게 Uber 를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일정이 맞지 않아 서로 약속이 엇갈린 채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 날은 꼭 짐을 보내야 한다고 하길래, 시간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심방 시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먼저 떠나던 제게, 오스카 아저씨는 ‘지금 버스 타고 가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 결국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오스카의 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말기암을 발견해서, 소셜워커를 통해 숙소와 병원치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했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오스카 아저씨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울 아저씨는 교회 입구 주차장 한켠에서 주무십니다. ‘누가 날 보고 있다’고 스패니시와 영어를 섞어 말씀하시며 ‘너도 조심하라’고 호의(!)를 담아 주의를 주곤 했습니다. Home Project를 하는 우리에게 ‘최고’라고 칭찬도 해주고, 가끔은 알 수 없는 말로 화를 내곤 해도, 제가 처음으로 노숙인분들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해 준 분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을 떠올린 것도, 처음 말을 걸고 이름을 나눈 것도, 매일 일과의 시작과 끝을 스몰토크로 열어준 것도 모두 파울 아저씨였습니다.
덩치가 커서인지 매서운 추위가 연일 계속 되어도 괜찮다고 하던 파울. 덕분에 저희 아이들도 성도님들도 눈이 오거나 기온이 내려가면 파울 아저씨 걱정을 합니다. 항상 주차장 한켠에 이불+옷가지+음식물 산더미를 만들어 두던 파울 아저씨. 어느날부터인가 보이지 않다가, 급기야 아저씨의 짐더미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습니다. 소식을 물어보니, 본인 요청으로 쉘터에 들어가게 되었고 병원 진료도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파울 아저씨와 인사도 못했지만, 그래도 잘 된 일입니다. 이제 만나기 어려워져서 아쉽지만(?), 짧은 시간 동안 후회 없이 섬길 수 있었어서 다행입니다.
선한 일도,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일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즉시 순종한 여는교회 성도들 생각에 든든합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닿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되” (갈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