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살전 2:1-8)

시작도 어렵지만, 지속하는 건 더 어렵습니다. 결심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새로운 신체리듬을 각인시킬 때 2-3일이 걸리며, 열흘 정도 지속하면 완전해 진다고 합니다. ‘마의 3일’을 넘어서면 지속하기가 수월해 진다고 하니, 새벽기도 3일째 나오신 분들은 큰 고비를 넘으셨습니다.

무리한 계획 때문에 포기하게 된다면, 처음 계획을 수정해서 실천 가능하게, +1 정도의 도전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습니다. 너무 먼 미래의 성취보다, 지금 당장의 성취에 집중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성취감이 쌓이면, 지속할 수 있는 힘도 자랍니다.

이 연구들을 교회 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나 사역에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무리한 계획으로 시작하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고, 오히려 포기하고 손을 놓게 될 수 있습니다. +1 정도 도전하는 계획을 세우고, 지속 / 각인시킨 후 새롭게 도전을 더해가는 것이 좋습니다. 주일을 지나고 나서도 2-3일이 동기가 가장 약해지는 때이니, 화요일이나 수요일밤에 성도들과 교제한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지속하기가 좋겠네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도 복음을 전하는 데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핍박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방해일 수 있습니다. 바울을 시기하거나 미워하여 모함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상황이 어려워도 마음이 모이면 오히려 파이팅이 넘칩니다. 그러나 오해를 받는 것, 미움 받는 것은 무척 괴롭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동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내 사람 /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사역했다면, 어려움을 만날 때 흔들렸을 겁니다. 얻는 것도 없는데 왜 계속해야 하나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기분을 맞춘 적도, 누구의 편을 들거나,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로 권위를 내세울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기를 돌보듯 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나누는 것도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에 마음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동기’를 점검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나의 만족을 위해 시작했다면, 처음 결심이 사라지고 흔들립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시작이었다면, 반대와 위협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