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인터넷에 올라오는 90년대 사진을 보면, 한국인의 성실성과 열정이 굉장합니다. 물난리가 나도 출근을 하고, 한 반에 50명이 넘었는데 선풍기 세 대로 여름을 났습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예전에 어떻게 그 무더위에 가득 찬 열차를 매일 타고 통학했을까 놀라웠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산 만큼,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가장 크게 유행한 단어는 ‘힐링’입니다. 미디어, 서점, 여행, 음식에서 온통 힐링을 앞세웠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욜로’, 그리고 이제는 ‘각자의 방식으로 만족’하려는 시도를 절대 지켜- 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위로, 만족, 행복, 감사, 모두 그만큼 중요하고, 실제로도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런 것들은 일시적입니다. 밥 먹어도 또 배고프고, 자고 일어나도 또 졸린 것과 같습니다. 소유와 성취에서 오는 만족은 기쁨을 주지만, 금방 사라집니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피로하고, 허무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모든 즐거움을 다 누리고 난 뒤 “헛되고 헛되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얻은 행복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너무 수고하고 잘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육체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사람은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목마름은 다르게 해결해야 합니다. 육체의 빵이 아니라 생명의 빵을 먹어야 합니다. 몸을 채우는 물은 다시 목마르지만, 영혼을 채우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습니다.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서로 고난과 핍박 중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고통이 계속되면, 궁핍, 환난, 어려움이 해결되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경험하는 위로, 기쁨, 감사 는 ‘환란 중에도 믿음에 굳게 선 성도들’입니다.
첫째, 말씀에서 나오는 믿음은 흔들려도 꺾이거나 죽지 않습니다. 상황 때문에 흔들리고,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흐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결국 사람과 상황을 뚫고 열매 맺습니다. 환란을 뚫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명이 삶으로 열매 맺을 때, 서로에게 큰 선물이고 위로가 됩니다. 여러분도 어떤 목사가 가장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셀럽 같은 목사, 내 기분을 잘 맞춰주는 목사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마음 다해 살아가고, 환란 중에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목사가 가장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어려워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를 만날 때, 큰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기쁨이 충만한 삶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와 함께 하는 삶입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어렵지만 믿음으로 살아가는 친구의 삶을 바라볼 때, 거기에 위로와 기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