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온전함’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가 되고 싶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서고 싶다.” 여러분이 말하는 ‘온전함’은 무슨 뜻입니까? 진심을 다해서, 지성과 감정 모두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대하면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도덕적 율법적으로 흠이 없으면 ‘온전’합니까?
제사 드릴 때 하나님께서 ‘온전한 제물’만 받으십니다. 제사장들도 ‘온전함’을 의미하는 의복을 입고, 정결의식을 행합니다. 사람이 완벽하게 온전할 수는 없어도, 하나님이 온전하시니 온전한 것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함’ 하면 제물이나 제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흠이 없어야 하고, 율법을 잘 지켜야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온전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온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온전한 제물이 되셨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온전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온전함은 무엇일까요? 본문이 말하는 온전함은 도덕적 율법적인 온전함이 아니라, 관계에서의 온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항상 성실하셨고, 변함 없이 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악하고 하나님을 떠나 배신할 때에도, 하나님은 끝까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지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상을 세우거나, 계명을 어긴 것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 관계를 더럽혔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망가트렸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종교생활을 열심히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분의 선하심을 외면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며, 하나님의 은혜를 뒤로 한채 마음대로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온전하지 못한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온전하시듯, 우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성실하십니다.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온전함이 우리를 온전함으로 이끄십니다. 그분의 성실하심이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합니다. 주의 인자하신 그 사랑이 우리를 다시 살리고, 다함이 없는 주님의 임재/함께하심이 부족한 나를 온전함으로 끌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