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될 때 (느 9:19-29)

스스로 불행해 지는 삶의 특징 중 하나는 ‘없는 것’ 혹은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워 보면, 아기 때부터 ‘하면 안 되는 것’만 골라 하는 것 같습니다. 서랍 문을 다 열고, 바닥에 개미 벌레도 주워 먹었을 겁니다. 높은 데 올라가고, 의자도 많은데 유리테이블에 올라가고.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그건 안 합니다. 좋은 장난감 앞에 놔줘도, 위험한 가위나 젓가락 가지고 놀아요. 부모는 안 그러고 싶어도 자꾸만 ‘No’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아기들도 제일 빨리 배우는 말 중 하나가 No 입니다. 엄마 아빠가 못하게 한 것만 기억해요.

‘욕망’의 문제입니다. ‘욕망’ 그 자체는 필요합니다. ‘욕망’이 있어야 발전이 있고, 성취도 있습니다. 그러나 ‘욕망의 방향’이 잘못되면 불행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수만 가지인데, 할 수 없는 것 한 가지를 욕망하면 불행합니다. 주어진 것이 너무 많은데, 없는 것 하나를 욕망하면 괴롭습니다. 아기들에게도 부모가 해 준 좋은 것이 많은데, 못 가진 것, 안 해 준 것, 그 하나에 집중하면 불행해 집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완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자신들은 본래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성실하게 우리 곁에서 인도하셨는지 깨닫습니다. 버려 두지 않으셨고,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19). 가르치시고, 음식과 물을 항상 채워 주셨습니다 (20). 무려 40년 동안 돌보셨기 때문에, 광야에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고, 약속하신 땅도 주셔서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큰 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불순종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는데, 없는 것 하나를 갖고 싶어서 이방인들과 결혼했습니다.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외면하고 불순종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도 에덴에서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꼭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만 가지를 제쳐두고 선악과에 손을 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넘치는데도, ‘왜 못 하게 하나? 왜 안 주시나?’ 하나에 꽂히면 불행합니다.

지난 일 년을 돌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실하셨고 좋으셨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고, 우리가 넘어질 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때에도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원하는 것 한 가지’,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데 꼭 필요하지도 않은 그 하나에 마음을 쓰느라고 슬픔과 불행에 갇혀 버립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살아계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선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앞으로도 우리를 향한 사랑이 변치 않으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없는 것, 없어도 되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불행했던 시간들을 내려 놓고,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