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친구 (살전 2:17-20)

좋은 친구를 갖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바램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 어른들께서 ‘인생에 좋은 친구 세 명만 있어도 성공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때에는 늘 친구들과 함께 하니 그게 뭐 그리 중요한지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인생의 중반을 지나가며 돌아보니, 마음 맞는 친구, 깊이 사랑하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닫게 됩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면 됩니다. 때로는 운도 필요합니다. 만남 이후에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합니다. ‘복음’으로 맺어진 우정입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머무른 것은 약 3개월 정도입니다. 짧은 기간 복음을 전했는데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삶이 급격하게 변화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도바울을 시기하여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도시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짧은 기간, 지도자는 오해와 소문이 많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사도바울은 깊은 신뢰와 사랑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복음’ 때문입니다.

10년을 알아도 연결되지 않는 관계가 있고, 짧게 만나도 평생 마음에 남는 우정이 있습니다. ‘복음’으로 맺어지면,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삶이 변화되면, 상황과 기간은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박해 중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켰고, 바울에 대한 의리도 지켰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웠을까요. 그래서 바울은 ‘내가 얼굴은 떠나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함께 있다. 여러분이 나의 기쁨이고 자랑이다. 영광이다. 예수 앞에서 너무 자랑스럽다’. 깊이 사랑합니다.

이 말씀을 계속 묵상하다 보니까, 내게도 이런 말을 해 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를 사랑하고 고마워서,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고, 포기하고 싶어도 믿음을 지킵니다. 그리고 그런 저를 친구도 보고 싶어하고 사랑합니다. 그 친구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너와 함께 있다. 지금이라도 너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 다시 만날 때, 너가 내 사랑이고, 자랑이고, 기쁨이다.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 큰 위로입니다. 어렵지만, 살 맛 나게 합니다.

예수의 사랑이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됩니다. 상황이 힘들어도, 연약함에 흔들려도, 예수가 나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시니, 오늘도 믿음으로 걷습니다.

작심삼일 (살전 2:1-8)

시작도 어렵지만, 지속하는 건 더 어렵습니다. 결심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새로운 신체리듬을 각인시킬 때 2-3일이 걸리며, 열흘 정도 지속하면 완전해 진다고 합니다. ‘마의 3일’을 넘어서면 지속하기가 수월해 진다고 하니, 새벽기도 3일째 나오신 분들은 큰 고비를 넘으셨습니다.

무리한 계획 때문에 포기하게 된다면, 처음 계획을 수정해서 실천 가능하게, +1 정도의 도전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습니다. 너무 먼 미래의 성취보다, 지금 당장의 성취에 집중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성취감이 쌓이면, 지속할 수 있는 힘도 자랍니다.

이 연구들을 교회 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나 사역에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무리한 계획으로 시작하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고, 오히려 포기하고 손을 놓게 될 수 있습니다. +1 정도 도전하는 계획을 세우고, 지속 / 각인시킨 후 새롭게 도전을 더해가는 것이 좋습니다. 주일을 지나고 나서도 2-3일이 동기가 가장 약해지는 때이니, 화요일이나 수요일밤에 성도들과 교제한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지속하기가 좋겠네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도 복음을 전하는 데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핍박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방해일 수 있습니다. 바울을 시기하거나 미워하여 모함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상황이 어려워도 마음이 모이면 오히려 파이팅이 넘칩니다. 그러나 오해를 받는 것, 미움 받는 것은 무척 괴롭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동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내 사람 /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사역했다면, 어려움을 만날 때 흔들렸을 겁니다. 얻는 것도 없는데 왜 계속해야 하나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기분을 맞춘 적도, 누구의 편을 들거나,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로 권위를 내세울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기를 돌보듯 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나누는 것도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에 마음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동기’를 점검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나의 만족을 위해 시작했다면, 처음 결심이 사라지고 흔들립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시작이었다면, 반대와 위협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 (살전 1:6-10)

신앙이 깊어지면, 관심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나’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이기적인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 나아왔던 수많은 병자들, 죄인들, 모두 ‘자신의 문제’를 들고 예수 앞으로 나아옵니다. 나의 문제나 연약함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선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의 능력과 사랑으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합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관심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교회 공동체가 보입니다. 내가 사는 도시와 이 세상이 보입니다. 저는 처음 예수를 믿고 기도만 하면 눈물이 터졌습니다. 괴롭기는 했어도 운 적은 없는데, 예수 믿고 울보가 되었어요. 청년부 수련회에 가는데, 기도제목을 잔뜩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릎을 꿇으니 나를 위해서는 그만 기도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운 적도 없는데, 성령님께서 말씀을 따라 이웃과, 리더들,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면 섬기는 삶, 복음을 전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이웃을 잘 도와줘서 예수님 믿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삶이 한 대답이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해 세워졌습니다. 큰 환란과 핍박으로 바울 일행은 떠나고, 남겨진 성도들을 걱정하며 보낸 편지입니다. 디모데를 통해 전달된 소식을 들으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환난 중에도 성령이 주신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예수를 본 받았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며 살다 보니, 우상을 버리고, 환난 중에도 믿음으로 살며, 그 결과 주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교인을 통해 온 도시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말로 전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말로 권유해야 예배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야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말로 권한다고 해서 다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 내 삶이 예수를 닮아가고, 예수를 향해 걷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복음 전하는 사람의 삶도 중요합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예수를 사랑하며 닮아가고 있다면 이렇게 세 가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눈과 귀를 열어 하나님을 보게 하십시오. 복음 전할 사람을 보내 주시고, 마음과 귀를 열어 듣게 해 주세요. 출석할 교회로 인도해 주세요.” 여러분이 예수를 닮아갈 때, 먼 곳에 있는 가족에게도 복음은 능력으로 전해질 것입니다.

위기가 끝이 아닙니다 (왕하 25:18-30)

예루살렘 도시가 결국 멸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시간 경고했습니다. 협박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자식이 망하지 말고, 다치지 말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가벼워지면, 몸은 편안해 지고, 영혼은 병듭니다. 결국 병든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도시, 은혜로 선물 받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생명 없는 땅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믿음으로 싸워 얻은 땅이 사라졌습니다.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가거나 죽임 당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하나님의 은혜이고 열심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가벼워지면, 결국 생명 없는 땅이 될 것입니다. 어둠과 죽음에 덮이게 됩니다. 그러나 끝이 아닙니다.

바벨론의 그달리야 총독, “두려워 말라.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러면 너희가 잘 될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구원할 것이다. 평화와 안정을 얻을 것이다.” (렘 46:27-28)

고난과 위기가 오래 되면 소망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반바벨론파 이스마엘은 총독 그달리야를 죽이고, 유대인과 바벨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래봐야 바벨론이 두려워 애굽으로 피할 뿐입니다. 우리의 삶이나 공동체에 소망을 찾기 어려워도, 아직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 분의 열심에 소망이 있습니다.

열왕기하의 마지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37년 지난 후 유다 왕 여호야긴은 감옥에서 풀려나 바벨론의 다른 왕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왕의 식탁에서 먹고 필요한 것은 늘 공급 받았습니다.

위기라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지금 문제가 많고, 실제로 죽음과 어둠에 눌려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끝내지 않았다면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해결이 어려운 삶을 보지 마시고,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반바벨론파처럼 기분대로 행동하다가 오히려 두려움에 도망치고 잊혀지는 삶이 되지 마십시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여 오늘 순종하세요.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선한 일을

새 예배당으로 이사 온 지도 6개월이 지나갑니다. 단순히 예배장소가 필요해서 찾아온 곳인데, 예상하지 못한 경험을 하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러빗은 3주년 감사 Home Project 준비를 하며 처음 만났습니다. 매일 미국교회에 점심을 먹으러 오는 노숙인분들 중에, 젊은 흑인여성이 있어서 초대했습니다. 날이 추워지는데 유독 얇은 외투를 입고, 다른 분들에 비해 너무 어려 보여 청년들 생각도 나고 해서 ‘꼭 오라’고 여러 차례 권했습니다. 그리고 행사 당일, 와서 치킨숩도 잘 먹고, 새 침낭에, 큰 쇼핑백에 한 짐을 챙겨서 돌아갔습니다. 

며칠 후 사무원인 Divine이 제게 와서 ‘러빗이 너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나가보니, 며칠 전 받은 새 침낭을 도둑 맞았다고 하나 더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새 침낭을 챙겨주고 꼭 따뜻하게 지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종종 점심시간에 만나 안부를 나누곤 했습니다. 며칠째 강추위가 계속 되던 어느날, Divine이 ‘너 혹시 소식 들었냐’며 물어 왔습니다. 러빗이 강추위에 공원에서 자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청년처럼 어려 보여도 아이가 하나 있다고 했는데, 옷도 새 침낭도 여러 번 줬는데 늘 춥게 하고 다니더니.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들은 성도들은 주일예배 중에 흐느껴 울기도 했습니다. 

며칠째 슬퍼하던 어느날 기도 중에 든 생각입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 웃으며, 테이블에 앉아서, 직접 요리한 식사를 했던 것이 아마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외투도, 새 침낭도, 러빗의 마음에는 따뜻한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추위와 외로움과 싸우던 여기보다, 따뜻한 주님 품에 안긴 지금이 더 낫지 않을까. 오랜 후에 우리 주님 앞에서 러빗을 만나면, 아마 많이 반가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오스카 아저씨는 늘 저를 찾아서 당당하게 부탁을 합니다. 라이드를 해 달라. 건물 안에서 먹게 해 줘라. 내 짐을 맡아줘라, 몇 시까지 찾으러 오겠다. 우버 불러달라. 그러면서, 기회만 되면 자신의 계획을 얘기합니다. 지금 한 쪽 눈이 아파서 수술 받아야 하는데 치료 받기가 어렵다. 겨울이 되면 디씨는 추워서 남쪽으로 가고 싶은데, 준비가 어렵다. 체구가 워낙 작기도 하고 늘 부탁을 하셔서, 뭔가 안타까움 반 끌려다니는 마음 반 해서 자주 도움을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Divine이 전화해서 ‘오스카가 코비드에 걸렸다고 하는데, 너도 close contact 일 지 몰라서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괜찮았고, 걱정이 무색하게 격리를 마치고 다시 나타나서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몇 주 전, 자신의 짐을 메릴랜드의 동생에게 보내야 한다며 제게 Uber 를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일정이 맞지 않아 서로 약속이 엇갈린 채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 날은 꼭 짐을 보내야 한다고 하길래, 시간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심방 시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먼저 떠나던 제게, 오스카 아저씨는 ‘지금 버스 타고 가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 결국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오스카의 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말기암을 발견해서, 소셜워커를 통해 숙소와 병원치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했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오스카 아저씨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울 아저씨는 교회 입구 주차장 한켠에서 주무십니다. ‘누가 날 보고 있다’고 스패니시와 영어를 섞어 말씀하시며 ‘너도 조심하라’고 호의(!)를 담아 주의를 주곤 했습니다. Home Project를 하는 우리에게 ‘최고’라고 칭찬도 해주고, 가끔은 알 수 없는 말로 화를 내곤 해도, 제가 처음으로 노숙인분들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해 준 분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을 떠올린 것도, 처음 말을 걸고 이름을 나눈 것도, 매일 일과의 시작과 끝을 스몰토크로 열어준 것도 모두 파울 아저씨였습니다.

덩치가 커서인지 매서운 추위가 연일 계속 되어도 괜찮다고 하던 파울. 덕분에 저희 아이들도 성도님들도 눈이 오거나 기온이 내려가면 파울 아저씨 걱정을 합니다. 항상 주차장 한켠에 이불+옷가지+음식물 산더미를 만들어 두던 파울 아저씨. 어느날부터인가 보이지 않다가, 급기야 아저씨의 짐더미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습니다. 소식을 물어보니, 본인 요청으로 쉘터에 들어가게 되었고 병원 진료도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파울 아저씨와 인사도 못했지만, 그래도 잘 된 일입니다. 이제 만나기 어려워져서 아쉽지만(?), 짧은 시간 동안 후회 없이 섬길 수 있었어서 다행입니다. 

선한 일도,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일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즉시 순종한 여는교회 성도들 생각에 든든합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닿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되” (갈 6:10)

Merry Christmas!

올해 여는교회는 조금은 불안하게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수가 급증하면서 성도들은 잘 모이지 못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갑작스럽게 이전 예배당에서 이사해야 했습니다. 알링턴 주변의 예배당들이 다 문을 닫아서 막막한 중에, 역시 문을 닫은 한 교회에서 예배장소를 빌려주겠다고 응답해 왔습니다.

그렇게 텅 빈 도시와 예배당이 있는 새로운 지역으로 와서, 재미있는 변화와 도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사 후에 청년들이 매주 방문하고 있고, 새로운 노숙인 이웃들과 함께 Home Project: Soup Kitchen 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못할 줄 알았던 Thanksgiving 만찬도 하고, 급기야 노숙인 이웃들을 위한 Coat Drive 도 진행합니다.

연초에는 모든 계획이 막히거나 변경되어서 조금 어려웠는데,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도전들로 훨씬 재미있는 한 해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변화를 기뻐하면서 행복하게 동참하는 성도들과 함께, 여는교회는 재미있는 연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3주년 감사 프로젝트 "Home"

4개월 전, 처음 Rosslyn 예배당으로 이사 왔을 때 우리를 반겨 준 분들은 노숙인들이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오랜 기간 건물들을 사용하지 않아서였는지, 빈 주차장 곳곳에 노숙인분들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부끄럽게도 저의 첫 마음은 “냄새가 너무 심하다”, 그리고 “새벽기도나 저녁모임 때 자매들이 불안할텐데”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출근 때마다 특별한 감정 없이 그분들을 지나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아침, ‘냄새가 심하네’ 하며 계단을 오르던 중 떠오른 풍경이 있었습니다. 성전 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성전 주변에는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 거주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종교인들에게 그들은 성전 주변 풍경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달랐죠. 그들의 마음을 보셨고, 손도 내밀어 주셨습니다. 저도 이 분들을 도시의 풍경 중 하나로 어쩌면 그보다 더 불편한 마음으로 감정 없이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날부터 그 분들의 이름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계단 밑에 내려가서 안부를 묻고, 따로 떨어져 식사를 하고 있는 분이 계시면 음료수를 사다 드렸습니다. 안전한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으며 몇 분과는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9월부터 온라인 남성큐티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큐티방 형제들이 묵상과 적용으로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무 도시인’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지난 몇 주간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을 준비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급기야 한 형제의 제안으로 ‘노숙인분들을 초청한 만찬’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저는, 주님의 음성으로 알고 형제들을 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3주년 예배를 앞둔 시점이라, VIP 게스트 초대하는 마음으로 “Home Project”를 준비했습니다.

매일 이분들을 찾아가 초대장을 전하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숙인분들 중에도 베지테리안이 있어서 다양한 옵션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한 성도님께서 침낭을 여러 개 기증해 주셔서 필요를 파악하던 중, 한 노숙인분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는 침낭이나 이불을 가지고 다니면서 노숙인이라는 것을 티내고 싶지 않아요. 외투를 구할 수 있으면 그걸 선호합니다.” 한 젊은 여성분은 “짙은색 침낭이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이해 못했는데, 빨래를 하기 어려워서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습니다. 늘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던 ‘모니카’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는데, 주변분들이 얘기해 주길 “모니카는 20년만에 처음으로 집을 구해서 거리생활을 마감했어요”라고 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임신 7개월째인데, 쉘터에서 나와 거리를 다니던 여성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도울 수 없는 일과 사람들이 도시 곳곳에 있었습니다. 추수할 일꾼을 구하라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3주년 감사 만찬은 행복했습니다. 이사간 성도님들이 5시간을 운전해서 찾아오시기도 했고, ‘어린성도’들도 케이크를 굽고 자기들의 캔디를 후식으로 나눠 주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무엇보다 참여하신 성도님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해 가실지 모두들 기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앞으로 목사님은 힘들어 지시겠지만” 이라고 웃으며 인사하네요. 전 저만 힘들어지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만 ㅎㅎ

정리를 마치고 주차장을 나서는데, 늘 주차장에 계시는 파울 아저씨가 인사하시네요. 오늘 너희 베스트였다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예측이 어렵지만, 제 기대대로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항상.

1주년 감사 특별새벽기도

Nov 6, 2019

여는교회는 이번 한 주간 특별한 새벽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첫 수련회를, 주일에는 1주년 감사예배를, 그리고 월요일부터 한 주간 특별새벽기도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새벽에 운전하다 보면 Ballston 시내는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예배당 건물도 잠들어 있습니다. 예배당 문을 열고 불을 켜는 반복되는 일상이, 이번 주간에는 조금 더 감사했습니다. 이 새벽에 잠든 도시를 깨우고, 잠자는 예배의 자리를 기도로 깨운다는 생각이 든 까닭입니다.

새벽에 기도의 문을 열며, 여는교회의 성도들, 특히 어린 성도들을 지난 1년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여러 일들로 흔들렸던 저희 가정을 성실하게 돌보신 좋으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아직 잠자고 있는 도시를 사랑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닫힌 길을 열고, 어두운 도시에 빛을 비추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생각에 따뜻한 새벽입니다.

앞으로 더 성실하게 그 뜻을 펼치실 좋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여는교회는 이번 한 주간 감사한 새벽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안을 전합니다!